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은 모두 실학파 이지만, 이 두사람은 세계관, 삶의 스타일, 문체, 당파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연암은 노론(조선시대 사색당파의 하나) 명문가 출신으로 뛰어난 문인이었지만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합니다. 반면 다산은 남인 출신으로 과거 공부를 열심히 해서 관료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처럼 연암은 권력의 중심에서 원심력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벗어났고, 다산은 권력의 중심에서 구심력을 가지고 계속 달려갔습니다.
연암이 과거를 거부하게 된 이유는 영,정조시대의 과거제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는 양반의 수가 너무 많아져 과거제도가 엉망진창이던 시대였습니다. 일례로 창경궁에서 과거를 치르는 날 시험장 문을 열면 수험생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리시험자까지 만 명이상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걸 한 번 겪은 연암은 “내가 살아돌아온 것만으로 너무 신통하다. 다시는 그런 곳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연암은 어떤 격식을 따르는 걸 매우 싫어했습니다. 규격화되고 제도화되는 걸 싫어하는 기질이었는데, 그런 기질은 우울증으로 표출됩니다.
우울증은 기본적으로 ‘자기로부터의 소외’에서 옵니다. 서양의 철학자 죄르지 루카치(György Lukács)는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던 시대는 복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하늘의 별을 보면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던 시대에는 소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기본적으로 우울증을 쉽게 앓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먹고사는 생존 문제로 자연으로부터의 소외 때문에 생기는 우울증은 발현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존 문제가 아니라 부에 대한 욕망으로 치달으면 자기로부터의 소외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경제가 안좋아서라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연과의 단절, 자기와의 대화 단절 등 실존적 문제입니다.
연암은 거식증과 불면증까지 동반한 우울증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암이 우울증을 해결했던 방법은 저잣거리로 나선 겁니다. 양반 자제 신분으로는 만날 수 없는 거리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의 만나 삶의 지혜를 얻고 함께 공감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통해 소외라는 감정이 해소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에 담아낸 것이 ‘방경각외전’이고, 이 안에는 ‘양반전’,’민옹전’,’김신선전’,’예덕선생전’ 등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연암은 우정과 글쓰기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병을 치유하는 과정 자체가 삶이고 소명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람과 소통하고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은 내가 경험한 것들을 내 몸에 새기는 과정입니다. 함께 감정을 나누고 그 감정이 가득차면 눈물이 나옵니다. 단전에서부터 차오르는 감정이 내 몸 전체에 전해지는 파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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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철학사에서 아주 특이하고도 독보적인 철학자들의 공통점은 ‘우정의 정치학’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서양 철학사에서는 에피쿠로스(Epikouros), 스피노자(Spinoza),니체(Nietzsche)를 들 수 있고 중국 철학사에서는 이탁오가 있습니다.
참고)
고미숙, 인문학 교양 동양고전